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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 ‘친’은 '친할 친(親)' 이 아닌 '어버이 친(儭)'”이라며 “일본을 어버이처럼 섬기는 족속들이란 뜻.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46287 일본어가 빠져 속상한 〈조선일보〉…’친일(儭日)’의 진정한 의미는? - 굿모닝충청[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중요한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사항 속에 숨어 있다는 의미의 속담이다.극우www.goodmorningcc.com [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중요한 문제점이나 불가..

⊙ 일반 2024.04.20

김해(金海, 금해)의 지명과 위치 (금주(金州), 김해소경, 금관국, 대가야)

김해(金海)의 지명변천 • 삼국사기 (삼국시대): 금관국(金官國), 가락국(伽落國), 가야(伽耶), (신라) 금관군(金官郡), 금관소경( 金官小京), 김해경(金海京)/김해소경(金海小京) • 삼국사기 (고려시대) : 김주(金州, 금주) • 삼국유사(삼국시대) : 대가락(大駕), 가야국(伽耶國) (여섯 가야(伽耶)중의 하나), 금관경(金官京) • 삼국유사 (고려시대) : 임해현(臨海縣), 임해군(臨海郡) 혹은 김해부(金海府). • 고려사 (고려시대) : 김해부(金海府), 임해현(臨海縣), 금주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 금주(金州),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 김녕현(金寧縣), 금주목(金州牧), 김해부(金海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삼국사기 권 제34잡지 제3 지리(地理)一 신라..

⊙ 일반 2024.04.04

탐라(躭羅)・탐모라(耽牟羅)・ 담모라(□牟羅)・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탁라(托羅) ・주호(州胡)

대륙 사서를 통해 본 탐라(躭羅) □ 사서에서 사용한 명칭. 탐라(躭羅) 삼국사기, 원사(외이열전 > 탐라(耽羅)) 탐모라(耽牟羅) 삼국사기, 북사(열전 > 백제(百濟)) 담모라(□牟羅)(聃牟羅) 수서 (隋書) (동이열전 > 백제) 섭라(涉羅) 삼국사기, 위서, 북사(열전 > 고구려) 담라(儋羅) 신당서, 자치통감, 태평환우기, 옥해(玉海) 탁라(乇羅) 삼국유사 탁라(托羅) 삼국유사 주호(州胡) 후한서(後漢書) > 동이열전 > 한(韓) 삼국지(三國志) > 魏書 30 東夷傳 > 韓 ◇ 중국정사조선전 > 북사(北史) > 열전(列傳) > 백제(百濟) > 이듬 해에 [隋나라] 6軍이 遼水를 건너자, 餘璋 역시 국경에다 ○ 이듬 해에 [隋나라] 6軍이 遼水를 건너자, 餘璋(여장)※ 역시 국경에다 군사를 엄중히 배..

⊙ 일반 2024.03.29

우산국 울릉도 우릉 무릉

삼국사기 고려사의 우산국/울릉도/ 우릉 또는 무릉 ○ 고려사 > 권별 보기 > 志 > 지 권제12 > 지리3(地理 三) > 동계 > 울진현 울진현 울진현(蔚珍縣)은 본래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고울이군(古亐伊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으로 삼았다. 고려 때에 현(縣)으로 강등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置令]. 울릉도(鬱陵島)【현(縣)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고, 무릉(武陵) 혹은 우릉(羽陵)이라고도 불렀으며 사방이 백리이다. 지증왕 12년(511)에 와서 항복하였다. 태조 13년(930)에 섬사람들이 백길사두(白吉士豆)를 보내 방물(方物)을 바쳤다. 의종 11년(1157)에 왕이 울릉의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여 옛..

⊙ 일반 2024.03.28

고려 개경 나성(羅城)

● 고려 왕경(王京) 개성부(開城府) ○ 고려사 > 권별 보기 > 志 > 지 권제10 > 지리1(地理 一) > 왕경 개성부 > 연혁 왕경(王京) 개성부(開城府)는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부소갑(扶蘇岬)이다. 신라(新羅)에서 송악군(松嶽郡)으로 고쳤다. 태조(太祖) 2년(919)에 송악(松嶽)의 남쪽에 도읍을 정하여 개주(開州)라 하고 궁궐을 창건하였다. 【회경전(會慶殿)은 뒤에 승경전(承慶殿)으로 고쳤다. 응건전(膺乾殿)은 봉원전(奉元殿)으로 고쳤다. 장령전(長齡殿)은 천령전(千齡殿)으로, 함경전(含慶殿)은 향복전(向福殿)으로, 건명전(乾明殿)은 저상전(儲祥殿)으로, 명경전(明慶殿)은 금명전(金明殿)으로, 건덕전(乾德殿)은 대관전(大觀殿)으로, 문덕전(文德殿)은 수문전(修文殿)으로, 연영전(延英殿)은 집..

⊙ 일반 2024.03.02

삼국사기 전주(全州)

○ 三國史記 권 제50 열전 제10 > 견훤(甄萱) > 900년 후백제왕을 자칭하다(0900년 (음))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註 001)에 이르니 주(州)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수고를〕 위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註 002)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註 003) 이에 백제는 금마산(金馬山)(註 004)에서 개국하여 6백여 년이 되었는데,(註 005) 총장(摠章) 연간(註 006)에 당(唐) 고종(高宗)(註 007)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蘇定方)(註 008)을 보내어 배에 군사 130,000명을〔싣고〕 바다를 건넜고, 신라의 김유신(金庾信)(註..

⊙ 일반 2024.02.20

고려 -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2)

■ 명사 -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 ○ 명사 지리지 『明史』卷41 志17 地理2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권별 보기 > 명사 > 『명사』권41 지17 지리(地理)2 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 > 明史 > 『明史』卷41 志17 地理2 > 고려와의 경계인 철령성에 철령위를 설치하다 『明史』卷41 志17 地理2 山東 遼東都指揮使司 鐵嶺衞 고려와의 경계인 철령성에 철령위를 설치하다 홍무(洪武) 21년(1388) 3월에 옛 철령성(鐵嶺城)에 설치하였다. 〈홍무〉 26년(1393) 4월에 옛 은주(嚚州)의 땅으로 옮겼으니 이는 곧 지금의 치소(治)이다. 【서쪽에는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에는 범하(汎河)가 있으며 또한 남쪽에는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남쪽에는 의로..

⊙ 일반 2024.02.05

고려 -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1)

고려사에서의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 ※ 철령(鐵嶺)은 지역(고개), 철령위(鐵嶺衛)는 명나라가 철령에 설치한 일종의 군사 기구( 위소(衛所), 치소(治所)...) ※ 이미 여러 역사학자들, 재야학자들, 역사에 깊이 있는 일반인들에 의해, 사 논문 및 실제위치 답사 등을 통해 검증되었다고 보는 요동에 있는 철령, 철령위, 쌍성총관부. 하루 빨리 일본관변사학자에 의해 왜곡날조된 고려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 고려사 철령(鐵嶺) ○ 고려사 > 卷二十四 > 世家 卷第二十四 > 高宗 42年 > 2월 > 등주별초가 철령에서 몽고군을 물리치다 1255년 2월 7일(음) 갑술(甲戌) , 1255년 3월 16일(양) 등주별초가 철령에서 몽고군을 물리치다 몽고군이 철령(鐵嶺)에 진을 치고 유숙하였는데 등주별초..

⊙ 일반 2024.02.05

고려 - 진주목(晉州牧)

고려사 진주목 고려사 > 권별 보기 > 志 > 지 권제11 > 지리2(地理 二) > 경상도 > 진주목 진주목(晉州牧)은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列城)【일명 거타(居陁)라고도 한다.】으로, 문무왕(文武王) 2년(662)에 신라(新羅)가 차지하여 주(州)를 두었다. 신문왕(神文王) 4년(684)에 거타주(居陁州)를 나누어 청주총관(菁州摠官)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강주(康州)로 고쳤다가, 혜공왕(재위 758~780) 때 다시 청주(菁州)가 되었다. 태조(太祖) 때 다시 강주(康州)로 고쳤다. 성종(成宗) 2년(983)에 처음 12목(牧)을 두었는데, 진주[晉州]도 그 중 하나였다. 〈성종〉 14년(995)에 12주 절도사(節度使)를 두면서 진주(晉州) 정해군(定海軍)이라 부르..

⊙ 일반 2024.02.01

고려 영토 경계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들

고려사 지리지 ○ 고려사 > 권별보기 > 志 > 지 권제10 > 지리1(地理 一) > 지리 서문 지리1(地理一) ...(초략)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0,000 리(里)나 된다. ...(중략).. 그 사방 경계[四履]는,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Link: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56r_0010_0010&types=r 고려시대 사료 DB지 권제10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db.history.go.kr ○..

⊙ 일반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