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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躭羅)・탐모라(耽牟羅)・ 담모라(□牟羅)・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탁라(托羅) ・주호(州胡)

언제나그기 2024. 3. 29. 14:29

대륙 사서를 통해 본 탐라(躭羅)

□ 사서에서 사용한 명칭.
탐라(躭羅)          삼국사기, 원사(외이열전 >  탐라(耽羅))
탐모라(耽牟羅)   삼국사기, 북사(열전 > 백제(百濟))
담모라(□牟羅)(聃牟羅) 수서 (隋書)  (동이열전 > 백제)
섭라(涉羅)          삼국사기, 위서, 북사(열전 > 고구려)
담라(儋羅)          신당서, 자치통감, 태평환우기, 옥해(玉海)
탁라(乇羅)          삼국유사
탁라(托羅)          삼국유사
주호(州胡)          후한서(後漢書) >  동이열전 > 한(韓)
                             삼국지(三國志) > 魏書 30 東夷傳 > 韓

◇ 중국정사조선전 > 북사(北史)  > 열전(列傳)  > 백제(百濟)  >   이듬 해에 [隋나라] 6軍이 遼水를 건너자, 餘璋 역시 국경에다

○ 이듬 해에 [隋나라] 6軍이 遼水를 건너자, 餘璋(여장)※ 역시 국경에다 군사를 엄중히 배치하여 놓고, [隋나라의] 군사를 돕는다고 공공연히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兩端策을 쓰고 있었다. 얼마 후 [百濟는] 新羅와 틈이 생겨 자주 전쟁하였다.
[大業] 10년(A.D.614; 百濟 武王 15)에 다시 사신을 보내어 朝貢(조공)하였다. 그 뒤로는 천하가 어지러워져 사신이 마침내 끊어졌다.
그 나라의 남쪽에서 바다로 석달동안 가면 躭牟羅國( 탐모라국)이 있다. 남북으로는 천여리이고 동서로는 수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많은데, 百濟에 附庸(부용)※되어 있다. 서쪽으로 사흘을 가면 貊國(맥국)에 닿는데, [그 나라는] 千여리가 된다고 한다.

○ 明年, 六軍 度(校勘 148)遼, 餘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 隙(校勘 149), 每相戰爭. 十年, 復遣使朝貢. 後天下亂, 使命遂絶.
其南, 海行三月有躭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西行三日, 至貊國 千餘里(校勘 150)云.

餘璋(여장) : 무왕(武王).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600년~641년이다. 또한 서동설화의 주인공이다.  대외적으로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수·당, 왜와 화친과 견제의 적절한 국제관계를 유지했다.

무왕의 성은 부여(夫餘), 이름은 장(璋)이고, 여장(餘璋)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강왕(武康王)·헌병왕(獻丙王)이라는 이칭도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제29대 법왕이다.

부용(附庸) : 세력이 미약한 제후국을 이르는 말.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12r_0010_0020_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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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사조선전  > 수서(隋書)  > 동이열전(東夷列傳) >  백제(百濟)  > 그 나라의 남쪽에서 바다로 석달을 가면

○ 그 나라의 남쪽에서 바다로 석달을 가면 □牟羅國(담모라국/ 聃牟羅)이 있는데, 남북으로는 천여리이고 동서로는 수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많다. 百濟에 附庸(부용)되어 있다. 百濟에서 서쪽으로 사흘을 가면 貊國(맥국)에 이른다고 한다.

其南海行三月, 有□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百濟自西行三日, 至貊 國(校勘 069) 云(校勘 070)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13r_0010_0020_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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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사조선전 >  수서(隋書)  > 동이열전(東夷列傳)  > 백제(百濟) >  陳을 평정한 해에 어떤 戰船 한척이 표류하여

○ 陳을 평정한 해에(註 156) 어떤 戰船 한척이 표류하여 바다 동쪽의 □牟羅國(담모라국)(註 157)에 닿았다. 그 배가 [본국으로] 돌아올 적에 百濟를 경유하니, [餘]昌이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냈다. 아울러 使臣을 보내어 表文을 올려 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高祖는 이를 갸륵하게 여겨 詔書를 내려,
“百濟王이 陳을 평정한 소식을 듣고 ....(생략)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13r_0010_0020_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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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사조선전 > 원사(元史) > 외이열전(外夷列傳)  > 탐라(耽羅)  > 耽羅는 高麗의 위성국이다.

○ 耽羅(탐라)(註 259)
耽羅(註 260)는 高麗의 위성국이다. 世祖가 高麗를 臣服시키고서 耽羅가 南宋과 日本의 요충지임으로 해서 주목하였다. 至元 6년(A.D.1269; 高麗 元宗 10) 7월에 明威將軍 都統領 脫脫兒註 261·武德將軍 統領 王國昌·武略將軍 副統領 劉傑을 파견하여 耽羅 등지의  사정을 살피게 하면서, 高麗國王 王禃에게 안내하는 관리를 선발하여 보내주도록 명하였다.
그 때 高麗를 배반한 林衍이란 사람의 잔당 金通精이 耽羅로 도망쳐 들어갔다.(註 262)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21r_0010_002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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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 문자왕(文咨王)  >  
예실불이 북위에 사신으로 가 황제를 알현하다 ( 504년 04월 )

13년(504) 여름 4월에 사신을 보내 북위(北魏)에 가서 조공하니(註 001), ...(생략)....
다만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가옥(珂玉)(註 005)은 섭라(涉羅)(註 006)에서 생산되는데, 부여는 물길(勿吉)(註 007)에게 쫓기는 바가 되었고,(註 008) 섭라(涉羅)는 백제에게 병합되는 바가 되었습니다. 이 두 물품이 제왕의 부고(府庫)에 올라오지 못한 이유는 실로 두 도적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생략)...

註) 005
가옥(珂玉) : 옥과 비슷한 흰 돌, 흰색 마노(瑪瑙) 등을 뜻한다.
註) 006
섭라(涉羅) : .... (그들만의 주장)
물길(勿吉) : 읍루(挹婁)의 후신이다.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19r_0020_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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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504) 여름 4월에 사신을 보내 북위(北魏)에 가서 조공하니, 세종(世宗)이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동당(東堂)에 불러들여 만났다. 예실불이 나아가 아뢰기를, “소국은 정성껏 대국[天極]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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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사조선전 > 삼국지(三國志)  >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  한(韓) >  그 나라 北方의 [中國]郡에 가까운 諸國은

중국정사조선전 >  三國志 > 魏書 30 東夷傳 > 韓  > 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 其遠處直如囚徒奴婢相聚.

○ 그 나라 北方의 [中國]郡에 가까운 諸國은 그런대로 약간의 禮俗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흡사 죄수와 奴婢가 모여 사는 곳과 같다. 별다른 珍寶가 나지 않고, 동물과 草木은 대략 中國과 동일하다. 큰 밤이 생산되는데 그 크기가 배만큼 크다. 또 細尾雞가 나는데 그 꼬리의 길이는 모두 5자(尺) 남짓 된다. 그 고장 남자들은 간혹 文身을 한 사람도 있다.
州胡(註 175)가 馬韓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말도 韓[族]과 같지 않다. [그들은] 모두 鮮卑族처럼 머리를 삭발하였으며, 옷은 오직 가죽으로 해 입고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옷은 上衣만 입고 下衣는 없기 때문에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韓나라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 其遠處直如囚徒奴婢相聚. 無他珍寶. 禽獸草木略與中國同. 出大栗, 大如梨. 又出 細尾雞(校勘 134), 范書, 作長尾鷄. 其尾皆長五尺餘. 其男子時時有文身. 又有州胡(註 175)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丁謙曰, 州胡, 卽今之濟州無疑.
....(생략)...

註) 175. (¤ 이런 것도 주석이라고...)
濟州島를 일컫는다. 州胡는 地名이나 國名은 아닌 듯 하며 住民集團內의 특징적 사실을 기록한 것 같다. 주로 記事의 내용이 住民들의 生活, 言語, 風俗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도 특수한 性格의 住民集團을 설명한 것 같다.
≪參考文獻≫
李丙燾, 「州胡考」『韓國古代史硏究』1976.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04r_0010_0070_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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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사조선전 > 후한서(後漢書)  * 동이열전(東夷列傳) >   한(韓)  >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州胡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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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州胡國(註 135)이 있다. 그 나라 사람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으며, 가죽 옷을 입는데 上衣만 입고 下衣는 입지 않는다.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韓의 國中에서 물건을 사고 판다.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jo_003r_0010_0070_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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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 탐모라(耽牟羅)・ 담모라(□牟羅)는
  ➥ 남북으로는 천여리이고 동서로는 수백리이다.(※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다.)
  ➥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많다.
  ➥ 百濟에 附庸(부용)되어 있다.
  ➥ (百濟에서) 서쪽으로 사흘을 가면 貊國(맥국)에 이른다.  (※ 한반도에 비정된 "백제"에서 서쪽으로 사흘 가면 어디가 나오는가?)
  ➥ 남송과 일본의(~에 대한) 요충지이다.
   (※ 지금의 제주도(탐라로 불리웠다고 주장되는)가 과연 남송의(~에 대한) 요충지가 될 수 있는 지역인가?)

▪︎ 탐라(躭羅)・섭라(涉羅)・담라(儋羅)・탐모라(耽牟羅)・ 담모라(□牟羅) 는 백제의 속국.
▪︎ 탐라(躭羅)가 탐모라(耽牟羅)인지는 알 수 없다.
▪︎ 주호(州胡)는  馬韓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 주호(州胡)는 지금의 제주도나 대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호(州胡)는 탐라(躭羅)나 탐모라(耽牟羅)가 아니다.)

◇ 탐모라(耽牟羅) 후보1 <지금의 제주도>

(제주도의 남북, 동서 거리)

※ 제주도 남북 70~80리,  동서 1백 수십리 ~ 2백리.
※ 지금 제주도는 남북이 짧고 동서가 길다.

◇ 탐모라(耽牟羅) 후보2 <지금의 대만>

(대만의 남북, 동서 거리)

※ 지금의 대만은 남북 대략 1천백리, 동서 3~4백리(수백리)
※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다.
※ 남송과 일본의 (~에 대한) 요충지가 될 수 있는 지역.
¤ 탐모라(耽牟羅), 또는 모라(牟羅)로 기록되어 있다.

● 탐모라(耽牟羅) =  담모라(□牟羅) = 탐라(躭羅)라고 할 때,
대륙의  북사(北史), 수서(隋書)의 기록으로 보면, 어디가 탐라(=탐모라(耽牟羅)) 와 더 비슷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서의 기록만 보면,  담모라/탐모라의 크키는 지금의 대만과 비슷하다.

● 탐모라(耽牟羅) = 탐라(躭羅) 일까? 아니면  탐모라(耽牟羅) ≠ 탐라(躭羅) 일까?

● 탐모라(耽牟羅), 탐라(躭羅), 섭라(涉羅),  탁라(乇羅)는  같은 지역인가?  서로 다른 지역인가?
탐라는 지금의 대만이거나 제주도일텐데, 제주도는 송과 일본 두 나라에 대한 요충지가 되긴 어렵다.

● 섭라(涉羅)는 초기 고구려에 가옥(珂玉)을 제공한 지역. 후에 백제가 병합함.
  ➥ 섭라(涉羅)를 탐라(躭羅) (지금의 제주도로 보는)로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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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躭羅)・섭라(涉羅)・담라(儋羅)・탐모라(耽牟羅)・ 담모라(□牟羅)는 백제의 속국  (➩  신라의 속국  ➩  고려의 속국(위성국)).
(¤ 백제 22담로중 일부일 것이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麟德二年(665)) 八月, 壬子, 同盟于熊津城.
○ (麟德二年(665)) 八月, 壬子, 同盟于熊津城. 劉仁軌以新羅·百濟·耽羅·倭國使者浮海西還, 耽羅國, (一曰儋羅, 居新羅武州南島上, 初附百濟, 後附新羅).


¤ 탁라(乇羅)  (탁라(托羅))
어디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니 삼국유사 기록은 신라의 주변국임을 의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