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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전주(全州)

언제나그기 2024. 2. 20. 09:48

○ 三國史記
권 제50 열전 제10  >   견훤(甄萱)  >   900년 후백제왕을 자칭하다(0900년 (음))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註 001)에 이르니 주(州)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수고를〕 위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註 002)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註 003) 이에 백제는 금마산(金馬山)(註 004)에서 개국하여 6백여 년이 되었는데,(註 005) 총장(摠章) 연간(註 006)에 당(唐) 고종(高宗)(註 007)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蘇定方)(註 008)을 보내어 배에 군사 130,000명을〔싣고〕 바다를 건넜고, 신라의 김유신(金庾信)(註 009)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黃山)(註 010)을 지나 사비(泗沘)(註 011)에 이르러 당병(唐兵)과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完山)(註 012)에 도읍하여 의자왕(義慈王)(註 013)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마침내 후백제왕(註 014)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唐) 광화(光化)(註 015)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오월(吳越)(註 016)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오월왕(註 017)이 답례의 사신을 보냈다.(註 018) 이에 검교태보(檢校太保)(註 019)의 관직을 더하여 주었는데, 나머지는 전과 같았다.(註 020)

註 004
금마산(金馬山): 전라북도 익산시 소재의 금마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익산은 본래 백제의 금마저군(金馬渚郡)으로 경덕왕이 금마군(金馬郡)으로 이름을 고쳤다[본서 권제36 잡지제5 지리3 신라 금마군].
註 010
황산(黃山):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이다.
註 011
사비(泗沘):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서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이다.

Link :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50r_0030_0070

한국 고대 사료 DB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州)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수고를〕 위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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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 권별 보기 > 志 > 지 권제11 > 지리2(地理 二) > 전라도 > 전주목

연혁
전주목(全州牧)은 본래 백제(百濟)의 완산(完山)【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하고, 비자화(比自火)라고도 한다.】으로, 위덕왕(威德王) 원년(554)에 완산주(完山州)가 되었다. 〈위덕왕〉 11년(564)에 주(州)를 폐지하였다. 의자왕(義慈王) 19년(659)에 신라(新羅)가 당(唐) 장수 소정방(蘇定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하였다. 진흥왕(眞興王) 16년(555)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진흥왕〉 26년(565)에 주를 폐지하였다. 신문왕(神文王) 4년(684)에 다시 완산주를 두고, 경덕왕(景德王) 15년(756)에는 다시 전주(全州)라고 불렀다. 뒤에 견훤(甄萱)이 전주에 도읍(都邑)을 세웠으나, 태조(太祖)가 멸망시키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고쳤다. 〈태조〉 23년(940)에 도로 전주가 되었다. 성종(成宗) 12년(993)에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安撫使)라고 불렀으며, 〈성종〉 14년(995)에 12주 절도사(節度使)를 두면서 순의군(順義軍)이라고 부르고, 강남도(江南道)에 소속시켰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현종〉 13년(1022)에 다시 전주로 명명하였다. 공민왕(恭愍王) 4년(1355)에 원(元)의 사신 예스부카[埜思不花]를 구금하였다는 이유로 부곡(部曲)으로 강등하였다가, 〈공민왕〉 5년(1356)에 다시 완산부(完山府)가 되었다. 별호(別號)는 완산(莞山)【성종[成廟] 때 정하였다.】이며, 또 견성(甄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창진(新倉津)이 있다. 속군(屬郡)이 1개, 속현(屬縣)이 11개이고, 관할하는 지사부[領知事府]가 1개, 지사군(知事郡)이 1개, 현령관(縣令官)이 4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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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사료 DB

전주목(全州牧)은 본래 백제(百濟)의 완산(完山)【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하고, 비자화(比自火)라고도 한다.】으로, 위덕왕(威德王) 원년(554)에 완산주(完山州)가 되었다. 〈위덕왕〉 11년(56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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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史記 권 제34 잡지 제3

권 제34 잡지 제3  >   지리(地理)一 신라(新羅)  >   이전 백제 지역의 3주()

이전 백제 지역의 3주

이전의 백제(百濟) 영토 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 백제의 옛 궁성 북쪽 웅진구(熊津口)를 웅주(熊州)라 하고, 그 다음 서남쪽을 전주(全州), 그 다음 남쪽을 무주(武州)라고 하였다.

於𣄼(校勘 005)濟國界, 置三州. 百濟故城北熊津口曰熊州, 次西南曰全州, 次南曰武(校勘 006)州.

校勘 005
정덕본에는 자형이 불분명하나, 문맥상 百濟의 百을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校勘 006
정덕본에는 武자의 한 획을 결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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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사료 DB

잡지 제3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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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제34 잡지 제3 > 지리(地理)一 신라(新羅) 이전 백제 지역의 3주] 기록에 따라 표시해 본 지도

➥(사서기록) 백제 옛 도성(사비=부여) 북쪽 웅주=공주, 서남쪽 전주, 남쪽 무주=광주.
➥ (지도에서) 백제 옛 도성(사비=부여) 동북쪽 웅주=공주, 동남(또는 남)쪽 전주, 남쪽 무주.

※ 지금의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라는 것에 의문이 가는 내용들.
• 당군 13만명이 바다(서해?)를 건너 부여를 침공한 것.
• 김유신이 황산을 지나 사비에 이른 것.
• 후백제가 오월에 사신을 보내니 오월이 답례의 사신을 보낸 것.
• 전주를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고친 것.
• 전주가 강남도(江南道)에 속한 것.
• 공민왕 때 전주에서 원의 사신을 구금한 일.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비정이 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