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고려 -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2)

언제나그기 2024. 2. 5. 14:48


■ 명사 - 철령(鐵嶺), 철령위(鐵嶺衛)

○ 명사 지리지  『明史』卷41 志17 地理2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권별 보기 > 명사 > 『명사』권41 지17 지리(地理)2
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 > 明史 > 『明史』卷41 志17 地理2 > 고려와의 경계인 철령성에 철령위를 설치하다

『明史』卷41 志17 地理2 山東 遼東都指揮使司 鐵嶺衞

고려와의 경계인 철령성에 철령위를 설치하다

홍무(洪武) 21년(1388) 3월에 옛 철령성(鐵嶺城)에 설치하였다. 〈홍무〉 26년(1393) 4월에 옛 은주(嚚州)의 땅으로 옮겼으니 이는 곧 지금의 치소(治)이다. 【서쪽에는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에는 범하(汎河)가 있으며 또한 남쪽에는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남쪽에는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1396)에 의로천호소(懿路千戶所)를 이곳에 설치하였다. 또한 범하성(范河城)이 위(衛)의 남쪽에 있는며 범하성(汎河城)이라고도 하는데, 정통(正統) 4년(1439)에 범하천호소(汎河千戶所)를 이곳에 두었다. 동남쪽에는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즉 옛 철령성으로 고려(高麗)와의 경계에 접해 있으며,
....(후략)...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040_0010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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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철령위(鐵嶺衞)는 옛 철령성(鐵嶺城)에 설치.
➥ 그 뒤 옛 은주(嚚州) 땅으로 옮김.
➥ 서쪽에 요하(遼河). 남쪽에는 범하(汎河), 소청하(小淸河), 의로성(懿路城).
    ※ 요하(遼河)의 동쪽에 철령위(鐵嶺衞)가 있다.
➥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옛 철령성).

○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권별 보기 > 명사 > 『명사』권320 열전208 > 고려에 철령위 설치를 통보하다

『明史』卷320 列傳208 外國1 朝鮮 洪武 20年 12月
1387년 12월 미상(음)

고려에 철령위 설치를 통보하다
〈홍무(洪武) 20년(1387)〉 12월에 호부(戶部)에 명하여 고려왕에게 자문을 보내, “철령(鐵嶺) 북쪽과 동쪽, 서쪽의 땅은 과거에 개원(開元)에 속했던 곳이므로 요동에서 그를 통할해야 합니다. 철령의 남쪽은 과거에 고려에 속했던 곳이므로 고려에서 그를 통할해야 합니다. 각각 강역의 경계를 바르게 하여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게 하였다.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220_0210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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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령(鐵嶺) 북쪽과 동쪽, 서쪽의 땅은 과거에 개원(開元)에 속했던 곳. 즉, 철령(鐵嶺)은 요동에 있다.

○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권별 보기 > 명실록 > 『태조고황제실록』권190 > 고려의 철령 영유권 주장에 반박하다

『太祖高皇帝實錄』卷190 洪武 21年 4月 18日 壬戌 1번째 기사
1388년 4월 18일(음)

고려의 철령 영유권 주장에 반박하다
○이때 고려의 왕우(王禑, 우왕)가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 등이 본래 고려의 옛 땅이었으며 철령(鐵嶺) 땅은 실로 대대로 지켜오던 곳이었으니 바라건대 그대로 통속하게 해주십시오.”
...(후략)...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80r_0690_0010

고려시대 사료 DB

○이때 고려의 왕우(王禑, 우왕)가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 등이 본래 고려의 옛 땅이었으며 철령(鐵嶺) 땅은 실로 대대로 지켜오던 곳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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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 > 明史 > 『明史』卷136 列傳24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권별 보기 > 명사 > 『명사』권136 열전24 > 이원명이 고려에서 철령에 둔수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다

『明史』卷136 列傳24 李原名

이원명이 고려에서 철령에 둔수(경작하며 지키다)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다

이원명(李原名)의 자(字)는 자선(資善)으로 안주(安州) 사람이다. … 고려에서 상주하기를, 요동(遼東)의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가 모두 그 나라의 옛 땅이니 철령(鐵嶺)에서 둔수(屯戍)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원명이 말하기를, “몇몇 주(州)는 모두 원의 판도(版圖)에 들어와서 요(遼)에 속하였으니 고려의 땅은 압록강을 경계로 합니다. 지금 철령에 이미 위(衛)를 두었으니 다시 진청(陳請)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명하여 그 나라에 분토(分土)를 지키며 흔단을 일으키지 말라고 유시하게 하였다.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200_0030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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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등이 모두 요동(遼東)에 있으며, 철령(鐵嶺)은 이를 지킬 수 있는 위치에(요충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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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철령위 위치에 대한 재검토]
Reconsideration of Cheollyeongwi's Location

저널정보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선도문화 학술저널
仙道文化 제9집
2010.8 297 - 325 (29page)
저자정보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Link :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18719

[논문 볼 수 있는 곳]
(9권)철령위 위치에 대한 재검토 (복기대)
Link : https://kukhak.ube.ac.kr/index.php?mid=sundo&m=0&page=14&order_type=asc&document_srl=493

○ 연구논문 내용 중에...

홍무 26년에 옮긴 철령위는 현재 중국 요녕성 철령시로 그대로 남아 있다(지도 4 참조). 이 도시는 북으로는 개원, 남으로는 심양의 중간에 끼어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에 대하여 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27)

「철령위」
도사성 북 240리에 있다. 옛날에는 철령성이었고 지금의 철령위 치소 동남 오백리에 있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 홍무 21년에 철령위를 그곳에 설치했다가 26년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즉 요나라, 금나라 시대의 은주 옛 성이다.

※ 명일통지(明一統志) : 명나라가 1461년 편찬한 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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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의 철령위와 고려말 국경의 재검토]
Ming Dynasty's Cheollyeongwi and the border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학술저널
인문과학연구 제58집
2018.9 189 - 216 (28page)
DOI : 10.33252/sih.2018.09.58.189
저자정보
정태상 (인하대학교)

Link :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539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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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찰 기사

○“고려 북서쪽 경계는 만주지역”
복기대 교수, 中역사서를 통해 확인
Link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00414/27576119/1

(출처 : 동아일보)

○ 인하대 허우범 박사, "위화도와 철령위는 요동에 있었다" 입증
Link : http://m.chookj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51218

○ 고려말 국경이라 할 수 있는 ‘요동의 철령위’를 ‘강원도의 철령위’로 왜곡
민족·역사 / 김영호 기자
Link : https://m.mediaccbb.com/news/newsview.php?ncode=1065576947622195

(출처 : 미디어시시비비)

○ 고려말 우리국토, 만주까지였다
'강원도 철령위' 위치는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가 만들어 준 것이다
Link :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3

▲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정태만 교수가 밝혀낸 고려말 철령위 위치.(출처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압록강 서북쪽 ‘철령’은 요동… 일제때 함경남도 안변이라 우겼다
<10> 한국사 줄기 바꾼 ‘철령의 위치’
Link :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13024002&cp=seoul

(설명: 고려, 조선 및 중국 사료들이 말하는 고려의 북방강역. 지금의 요령성 진상둔진이 옛 철령이고, 흑룡강성 영안현이 공험진이다. 이케우치 히로시가 함경남도로 끌어내린 북방 강역을 100년째 추종하는 것이 이 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출처 : 서울신문)

○ “유구한 역사 지닌 철령…고려 땅 이름에서 유래”
Link :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568
(※ 몇몇 지역의 비정에 이견이 있으나 철령위에 대한 위치에 대한 고찰은 참고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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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령위 위치를 한반도내 강원도에 비정한  일본관변어용사학자의 주장을 비판이나 연구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고치지 않고 우리 후손들에게  가짜고려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역사학계는 역사매국노와 다를 바 없다.

■ 철령 철령위 쌍성총관부 모두 요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