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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진주목(晉州牧)

언제나그기 2024. 2. 1. 14:30

고려사 진주목
고려사 > 권별 보기 > 志 > 지 권제11 > 지리2(地理 二) > 경상도 > 진주목

진주목(晉州牧)은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列城)【일명 거타(居陁)라고도 한다.】으로, 문무왕(文武王) 2년(662)에 신라(新羅)가 차지하여 주(州)를 두었다. 신문왕(神文王) 4년(684)에 거타주(居陁州)를 나누어 청주총관(菁州摠官)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강주(康州)로 고쳤다가, 혜공왕(재위 758~780) 때 다시 청주(菁州)가 되었다. 태조(太祖) 때 다시 강주(康州)로 고쳤다. 성종(成宗) 2년(983)에 처음 12목(牧)을 두었는데, 진주[晉州]도 그 중 하나였다. 〈성종〉 14년(995)에 12주 절도사(節度使)를 두면서 진주(晉州) 정해군(定海軍)이라 부르고, 산남도(山南道)에 소속하였다. 현종(顯宗) 3년(1012)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안무사(安撫使)가 되었다. 〈현종〉 9년(1018)에 목으로 정하여 8목의 하나가 되었다. 별호(別號)는 진강(晉康)【성종[成廟] 때 정하였다.】, 또 청주(菁州)라고도 부르고, 또 진양(晉陽)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개(花開)와 살천(薩川)의 두 부곡(部曲)이 있다【그 우두머리는 모두 머리를 깎았으며, 승수(僧首)라고 부른다】. 또 창선도(彰善島)【섬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유질부곡(有疾部曲)이다. 고려에 와서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승격시켜 현(縣)이 되어 〈진주에〉 소속하였다.(【島本高句麗有疾部曲. 高麗, 更今名, 陞爲縣, 屬于州. )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왕의 이름을 피하여 흥선(興善)으로 고쳤다. 뒤에 왜구가 침략하자 주민들이 모두 도망가서, 직촌(直村)이 되었다.】가 있다. 속군(屬郡)이 2개, 속현(屬縣)이 7개이며, 관할하는 지사군[領知事郡]이 1개, 현령관(縣令官)이 3개이다.
[원문] 晉州牧本百濟居列城【一名居陁】, 新羅文武王二年, 取而置州. 神文王四年, 分居陁州, 置菁州摠官. 景德王, 改爲康州, 惠恭王, 復爲菁州, 太祖, 又改康州. 成宗二年, 初置十二牧, 州其一也. 十四年, 置十二州節度使, 號晉州定海軍, 屬山南道. 顯宗三年, 廢爲安撫使. 九年, 定爲牧, 爲八牧之一.別號晉康【成廟所定】, 又號菁州. 又號晉陽. 有花開·薩川兩部曲【其長皆剃頭, 稱爲僧首】. 又有彰善島【島本高句麗有疾部曲. 高麗, 更今名, 陞爲縣, 屬于州. 忠宣王卽位, 避王嫌名, 改爲興善. 後因倭寇, 人物俱亡, 爲直村】. 屬郡二, 縣七. 領知事郡一, 縣令官三.


※ 고려 진주목(晉州牧)
고려 초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jinju/toc/GC00402117?search=B1/3


※ 백제(百濟) 거열성(居列城)【일명 거타(居陁)】
• 거타주 (居陀州)
(이칭: 거열성(居列城), 거열성(居烈城), 고타(古陀), 거타(居陀), 자타(子陀), 자타(子他))
경상남도 거창과 진주 지역의 옛 지명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1946


• 거열산성(居列山城) (진주성,건흥산성(乾興山城))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jinju/toc/GC00400264



※ 창선도(彰善島) :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섬.
삼국시대(고구려의 유질부곡(有疾部曲), 이 설명을 못 넣은 것인지 안넣은 것인지) 유질부곡(有疾部曲).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5442



강성군
강성군(江城郡)은 본래 신라(新羅)의 궐지군(闕支郡)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궐성군(闕城郡)으로 고쳤다. 고려(高麗) 초에 강성현(江城縣)으로 고쳤으며, 뒤에 승격시켜 군(郡)이 되었다.
※ 경상남도 산청 지역 (단성현;;단계현(丹溪縣)과 강성현(江城縣)을 합쳐 이루어진 현.)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동군
하동군(河東郡)은 본래 신라(新羅)의 한다사군(韓多沙郡)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중략)... 별호(別號)는 청하(淸河)이다.
※ 경상남도 하동군

사주
사주(泗州)는 본래 신라(新羅)의 사물현(史勿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사수(泗水)로 고치고, ...
※ 경상남도 사천(泗川)시 [출처]여흥민시입암공파

악양현
악양현(岳陽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소다사현(小多沙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선현
영선현(永善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일선현(一善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상선(尙善)으로 고치고, 고성군(固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 경상남도 고성 지역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젘

진해현
진해현(鎭海縣)은 현종(顯宗) 9년(1018)에 〈진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별호(別號)는 팔진(八鎭) 【우산(牛山)이라고도 한다.】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지역(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일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곤명현
곤명현(昆明縣)은 신라(新羅) 때 부른 이름은 알 수 없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진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 경상남도 사천 지역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반성현
반성현(班城縣)은 신라(新羅) 때 부른 이름은 알 수 없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진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 지역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령현
의령현(宜寧縣)은 본래 신라(新羅)의 장사현(獐舍縣)으로,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함안군(咸安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진주목에〉 내속(來屬)하였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감무(監務)를 두고, 신번현(新繁縣)을 〈의령현에〉 소속시켰다.
※ 경상남도 의령군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57r_0010_0010_0080_0010&types=r

고려시대 사료 DB

진주목(晉州牧)은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列城)【일명 거타(居陁)라고도 한다.】으로, 문무왕(文武王) 2년(662)에 신라(新羅)가 차지하여 주(州)를 두었다. 신문왕(神文王) 4년(684)에 거타주(居

db.history.go.kr


※ 위처럼 비정된 지명과 삼국을 지도에 넣어보면..
아래처럼 멋진(?) 지도가 완성된다.

말이 되는가?  삼국을 한반도에 어떻게든 넣다보니 이런 결과된 것이라 본다.
위치비정이 잘못된 것이지 사서기록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우리역사가 어디 이것 하나 뿐이겠는가?
고구려의 평양성이 어딘 줄도 모르고, 요(遼)가 어디인 줄도 모르고, 백제의 한수(漢水)가 어디에 있는 강인줄도 모르고,  한성(漢城)  위례성(慰禮城)이  어디인 줄도 모르고...
한반도에서만 찾으니 답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