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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영토 경계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들

언제나그기 2024. 1. 31. 11:01


고려사 지리지

○ 고려사 > 권별보기 > 志 > 지 권제10  > 지리1(地理 一)  > 지리 서문

지리1(地理一)

...(초략)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0,000 리(里)나 된다.
...(중략)..

그 사방 경계[四履]는,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Link: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56r_0010_0010&type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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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권제10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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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 권별보기 > 志 >  지 권제36  병2(兵 二) > 성보 > 평장사 유소에게 명해 북쪽 국경 지역에 관방을 설치하게 하다

일자 1033년 미상 (음)

〈덕종(德宗)〉 2년(1033)에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에게 명하여 북방 경계에 처음으로 관방(關防)을 설치하였다.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國內城)의 경계로서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위원(威遠)·흥화(興化)·정주(靜州)·영해(寧海)·영덕(寧德)·영삭(寧朔)·운주(雲州)·안수(安水)·청새(淸塞)·평로(平虜)·영원(寧遠)·정융(定戎)·맹주(孟州)·삭주(朔州) 등의 13개 성(城)을 거쳐 요덕(耀德)·정변(靜邊)·화주(和州) 등의 세 성(城)에 이르러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길이가 1,000여 리에 뻗었고,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가 각 25척(尺)이다.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82r_0010_0050_0820&type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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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권제36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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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성보 : 고려장성
길이가 1,000여 리에 뻗었고,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가 각 25척(尺)이다.
(요덕진(耀德鎭)·정변진(靜邊鎭)·화주(和州) 등 3개의 성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닿았다. 사방으로 뻗은 길이[延袤]가 천여 리나 되고,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는 각각 25척(약 7.5m)이었다.)

>> 역사책의 고려 천리장성은 사서기록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  산 능선을 가로질러 성(벽)을 쌓는 무식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높은 산 험준한 지금도 가기 힘든 함경도 동쪽지역에 어떤 적을 방어하려고 저런 튼튼한 성을 쌓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Link : https://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bookId=%E5%BF%97&types=r#articleList/kr_082r_0010_0050


◇ 요사지리지

중국사서 > 고려·발해유민 기사 > 요사 > 『요사』권37 지7 지리지(地理志)1  > 지리지 서문

동쪽에서는 고려(高麗)가 조근하였고 서쪽에서는 서하[夏國]가 신하로 섬겼다.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40r_0260_0010

고려시대 사료 DB

태조(太祖)는 질랄부(迭剌部)의 무리로써 요련씨(遙輦氏)를 대신하여 임황(臨潢)에서 일어나 황도(皇都)를 세웠으며, 동쪽으로 발해(渤海)를 병합하여 성읍(城邑)을 얻은 것이 103 개소였다. …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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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 영토[封境]

영토[封境]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 있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東西)로는 2,000여리, 남북(南北)으로는 1,500여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전에는 요[大遼]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 후삼국시대 고려의 초기 영토(동서 2000여리, 남북 1500여리)+ 신라 백제 영토..
이런 영토를 한반도의 절반에 쑤시고 쑤셔넣은 조작한 가짜역사학자들.

Link :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d_003r_0020

고려시대 사료 DB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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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기록]
• 서북은 당이래로 압록을,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 요나라의 동쪽에 고려가 있다.
• 남쪽으로 요해, 서쪽으로 요수, 동쪽으로는 금과 맞닿았다.

※ 1300년 전 압록과 요수가 지금의 압록과 요수인가?
※ 조선 세종대왕이 찾으려다 찾지 못한 선춘령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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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찰 기사:


https://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477


‘허구의 고려 국경선’은 학계의 직무유기!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95906


“중국 철령까지 우리땅”…일제왜곡 극복, 고려국경 찾았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70522_0014911619


※ 복기대연구팀의 연구노력은 가상하다 할 것이나...
" ‘고려사-지리지’는 ‘고려는 서북으로 당 이래 압록을 경계로 했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대개 서북으로는 고구려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동북으로는 그것을 넘어섰다’고 기록했다."
라고 했는데 고려경계를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게 비정했는가?
조선 세종대왕의 명으로 김종서장군이 윤관의 공험진과 고려정계비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결국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두만강 너머 700리 쯤도 대충 그럴듯한 위치라 추정한 것이다.

쓰다 소우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이나바 이와키치 등의 일제어용가짜사학자들과 조선사편수회 부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에 의해 철저히 왜곡 조작된 고려사에 대해 연구하고 확인하여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발전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갈길이 아직 멀었다 본다. 좀더 연구하길 기대한다.

일제관변어용학자들과 그 제자인 친일사학자 이병도 신석호 및 이들의 제자무리들이 만든 조작된 우리역사를 왜 고치지 않을까 못할까.....

왜 중공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뺏으려하고 왜곡 조작하는지 근본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의 것이 더 좋으니 뺏으려 하는 것이 (특히 자존감이 낮은) 인간들의 일반적인 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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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 자들은 학자의 자격이 없고, 더더욱 알지 못한 것을 배우지 않고 연구하지 않은 자들 또한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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